2018년 10월 7일 일요일

The Rookie (2002) / St. Petersburg, FL

The Rookie (2002)


#1 짐 모리스
  옛 영화를 다시 보다. 야구를 주제로 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 또는 그 중 하나.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떠나 그냥 좋아하는 영화다. 보다보면 흐뭇해지는 영화다. 아마도 ‘꿈을 향한 도전’이라는 진부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소재를 다뤘기 때문일 것일 테지만. 2002년인가 2003년, 비디오(!)로 본 이후 네 댓 차례는 본 듯 하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35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데뷔, 리그 역사상 가장 늙은 신인이 된 전직 고등학교 화학 교사의 이야기. 한 때 프로선수를 꿈꿨지만 어깨 부상으로 좌절한 뒤 교사로 전직한 짐 모리스는 텍사스 소도시 빅 레이크의 고교 야구 코치도 겸직하고 있다. 늘 지기만 하는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지역리그 우승을 하면 프로팀 입단 테스트(트라이 아웃)를 받겠다”고 공언했는데, 제자들이 덜컥 우승을 해버려 ‘어쩔 수 없이’ 트라이 아웃에 나선다. 그런데 운동을 쉬는 동안 부상이 나아버렸고, 90마일 후반대의 빠른 볼을 던지게 된 그를 프로팀인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에서 스카우트 한다. 순탄치 않은 마이너 리그 생활을 이겨낸 뒤 드라마틱하게도 고향인 텍사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다는 이야기다. 갓난아기를 포함해 세 아이를 데리고 경기장에 나가 트라이 아웃에 참가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영화적인 재미를 더한다.
  실제로 모리스는 두 시즌을 더 뛴 뒤 부상이 재발해 은퇴한다. 데뷔할 때가 이미 다른 선수들은 은퇴할 나이였으니,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모리스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서전(The Oldiest Rookie)을 썼고 자서전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리스는 이후 자기계발 강연 시장에 뛰어들어 회당 1만 달러 이상을 받는 강사가 됐다고 하니, 꿈을 향한 집념이 그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 2 데니스 퀘이드 & 브라이언 콕스
  야구공을 던지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늙은 신인’ 모리스의 역할을 맡은 한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도 볼 만 하다. 늙은 신인 역할을 맡은 늙지 않는 배우. 1954년생이니 영화가 개봉됐을 때 퀘이드의 나이가 만으로 마흔 여덟이다. 그 나이에 서른다섯 야구선수 역할을 맡은 것도 대단한데, 영화 속에서 군살 없는 탄탄한 몸을 보여주면서 프로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조금 과장하면 25년 전 이너 스페이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모리스의 메이저리그 데뷔전 당시의 몸이 퀘이드보다 더 후덕한 것처럼 보인다. 이후 급격한 노화를 겪어 더 이상 젊은이 역할은 기대할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자기 실제 나이보다 젊은 역할을 맡는 데는 익숙한 것 같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모리스의 아버지, 짐 모리스 시니어 역할을 맡은 브라이언 콕스의 담담한 연기도 인상적이다. 진짜 할아버지가 아니면 못 할 것 같은 할아버지 연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마지막 순간 따뜻한 속내를 보여주는 군인 출신다운 연기가 마음에 든다.

# 3 알링턴
  영화속 모리스가 사는 곳은 빅 레이크. 영화에서도 빅 레이크 고교의 야구팀으로 나오지만, 모리스는 실제로는 빅 레이크가 있는 지역인 리건 카운티 고교의 야구팀 코치였다. 영화에서 모리스는 빅 리그 승격이 결정된 뒤 아내에게 전화해 “메이저 리그 구단에는 복장 규정이 있다”며 한 번도 입지 않은 재킷을 다음날 텍사스 주 알링턴의 경기장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메이저 리그 입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빅 레이크부터 알링턴까지는 자동차로 5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5시간 운전이라면 좀 더 극적이었겠지만, 실제 모리스의 집(엄밀하게는 모리스의 아내 로리와 세 자녀가 살던 집)이 있던 샌 안젤로는 알링턴에서 3시간 반 거리다. 로리가 옷을 가져다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로리가 그의 경기를 보러 세 아이를 태우고 3시간 반을 운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 때를 회상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는(‘야구팬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나온다고) 이야기. 영화에서는 로리 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대거 모리스의 데뷔전을 보러 경기장까지 응원가는 것으로 나온다.




오늘 여행 / 세인트 피터스버그 St. Petersburg, FL

  모리스가 데뷔한 메이저리그 팀은 템파베이 데블 레이즈(Devil Rays). 1998년 메이저 리그에 편입된 비교적 신생 팀이다. 지금은 한국 선수 최지만이 뛰어서 잘 알려진 팀. 2008년 시즌부터 데블을 빼고 레이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 팀의 연고지가 세인트 피터스버그다.
  모리스가 입단한 1999년 시즌은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하위권에 맴돌던 시기이고, 여기저기 선수를 구하러 다니던 때다. 레이즈가 조금 더 강팀이었다면 모리스가 메이저리거로 콜업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오래전 데블 레이즈 시절의 홈 구장을 구경한 적이 있다. 기념품도 샀었다.
  레이즈는 플로리다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홈으로 하는 팀.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철자가 같다. 인근 도시 템파와 묶어 이 지역을 템파베이라고 부른다. 플로리다에는 Naples(나폴리), Florence(피렌체)처럼 유럽의 아름다운 고도(古都)의 이름을 딴 도시가 많다. 문화 유적이나 경치는 비교할 바 아니지만, 날씨만큼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보다 좋지 않을까 싶다.
  기억에 남았던 곳은 끊어진 다리 낚시터. 배와 충돌하는 사고로 한 가운데가 끊어져버린 다리를 시민을 위한 바다 낚시터로 활용한 구조물이다. 가성비로 따지면 최저 수준의 피싱 피어인 셈인데, 우리 같으면 서둘러 덮어버렸을 과오를, 스스로 잊지 않고 경계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아 인상 깊었다. 낚시의 재미는 덤.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단양 도담삼봉

단양 도담삼봉

  정도전의 아호 삼봉(三峰)이 도담삼봉에서 따온 것이라는 이야기는 잘 알려졌다. 충주호 건설로 3분의 1일 물에 잠겼다고는 하지만, 과연 물 위의 세 봉우리가 주는 운치는 신비로웠다. 그 옛날 물 한가운데 잠긴 저 봉우리 위에 어떻게 정자를 지었을까. 도덕 정치를 주장한 유학자가 사랑할만한 경치다.   



2018년 6월 25일 월요일

Crepe / Harajuku, Tokyo

Crepe / Harajuku, Tokyo

  원어로는 크레프(Crepe)… 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끄레뻬’ 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익힌 뒤 갖가지 재료를 넣고 말아먹는 간식. 어린시절에는 동네 리어카에서도 만드는 사람들을 제법 본 것 같은데, 지금은 번화가로 나가지 않으면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어린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재료들이 무척 화려해졌다는 것. 단순히 밀가루 반죽에 크림 좀 발라서 먹던 끄레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만드는 사람의 기술이라면 최대한 얇게, 그렇지만 식감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강원도 평창 인근 시장 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추메밀전과 비슷한 느낌이다.

  만드는 사람의 기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먹는 사람의 기술도 있다. 수 십 가지 재료 중 그 날과 가장 잘 맞는 재료를 고르는 것. 하나하나 순서대로 먹어가는 것이 아니다. 날씨와 기분과 동반자와, 그 밖에 모든 상황을 고려해 가장 적절한 끄레뻬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기술 중 기술이다.   
 


2018년 5월 20일 일요일

Rome

Rome

  로마는 몇 차례 방문했는데, 그리 크게 변하지 않은 도시다. 몇 천 년 전 또는 몇 백년 전 모습으로 '먹고 사는' 도시인데, 변화를 바라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장 최근의 방문에서는 늘 봐왔던 로마가 아닌,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새로왔다. 하긴 어느 도시가 한 가지 면모만 있을까.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Charleston, SC

Charleston, SC

#1 앤디 맥도웰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그린카드’ ‘허드슨 호크’ ‘사랑의 블랙홀’.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 몇 번은 봤을 듯 한 이들 영화의 주인공, 앤디 맥도웰(Andy McDowell).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배우다. 개프니라는 작은 도시 출신인데, 찰스턴과는 자동차로 3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젊은 시절의 앤디를 보면 이상하게 낸시 트래비스(Nancy Travis)와 헷갈리곤 했다. 키도 앤디가 훨씬 크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편인데, 웃는 눈매가 비슷해서 그랬던 것 같다. 여하튼 앤디가 앉았던 테이블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2. Hyman's Seafood
  찰스턴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으로 꼽히는 곳. 아마도 고급 레스토랑이었으면 이만한 명성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싸지는 않더라도 큰 부담 없는 가격과 캐주얼한 분위기, 무엇보다 보편적인 입맛을 사로잡는 요리로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 5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친절도 한 몫을 하지 않을까 싶다. 4대인지 5대인지 모르겠지만, 주인장이 수시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 쿠폰(그래봤자 식당에서 주는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아래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다. 식당에서 음식 말고 살 것이 뭐가 있겠느냐는 통념을 깨고 아기자기한 로고 기념품을 많이도 만들었다. 동네 식당이라고 가볍게 넘길 것이 아니다. 어쨌든 이만한 전통이면 자랑할만한 것도 많을 테니.
 

2018년 2월 25일 일요일

Savannah, GA

오늘 여행

서배너 / Savannah, GA

#1
  잠시 인연을 맺은, 정확히는 1년 동안 알고 지내던, 미국인 초등학교 교사 이름이 Savannah 였다. 이름을 들으며 미국 남동부의 멋진 도시 태생이겠거니 했지만, 사실 그 도시에 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부모의 추억이었을까.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2.
  한 때 국내에서도 인기 있었던 혼혈 배우 데니스 오는 서배너 디자인대 사진학과 출신이다. 그 때문에 찾아간 것은 아니지만, 서배나 도심 한 가운데 있는 학교는 작고 단단한 느낌이었다. 한참 인기 있을 당시는 다니엘 헤니와 비교되고는 했는데, 지금은 뭘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모델이나 배우로 활동 중일 가능성이 높지만, 관심은 없다.

#3
  서배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어머니 엘런의 고향이다. 조지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지금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미국 남동부를 대표하는 고도(古都) 답게 여전히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 머물만큼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잘 구획된 거리와 조지아 식민지 시대를 재현한 고풍스러운 건축물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한 번 쯤 방문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더위를 피하려는 의도로 생각되는데, 발코니를 위로 올린 필로티 형태의 집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스패니시 모스(Spanish Moss)를 걸치고 있는, 귀신 나올 듯한 모양의 나무도 볼거리다. 1819년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증기기관선 이름이 서배너호다. 이 항구를 출발해 영국 리버풀로 향했기 때문이다. 강가에 개와함께 나와 배를 향해 흰 천을 흔들었다는 ‘The Waving Girl’ 동상이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천을 흔든 이유는 모르겠다.

#4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서배너에는 아픈 역사도 있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역사는 아니다. 서배너는 17, 18세기 미국에서 가장 번성한 노예 시장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들은 서배너 항에서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물론, 살아있을 경우에. 애당초 사람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붙잡힌 흑인 가운데 6분의 1 정도가 항해 도중 죽었다. 이들을 ‘노예’로 길들이는데 더 많은 수의 흑인들이 희생됐다. 주로 영국과 포르투갈 배들이 노예를 실어 날랐다.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쌀딩크' 박항서

‘쌀딩크’ 박항서, 끝나지 않은 기적

  선수 때부터 머리숱이 적었다. 대머리 미드필더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에 있었다. 지네딘 지단이 아니라 박항서다. 미드필더가 링커로 불리던 시절, 팬들은 악의(惡意)없이 그를 ‘대머리 링커’로 불렀다. 단신(1m66)의 약점을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극복해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1988년 은퇴 뒤 한 동안 잊혀졌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폴란드 전 골을 넣은 황선홍이 달려와 코치인 그를 끌어 않은 명장면 때문이다.

  ▷감독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물려받았지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감독으로 1부 리그 우승도 없었다. 급기야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에 밀려 몇 년간 실업자로 살기도 했다. 국내 3부 리그격인 창원시청을 지도할 때 베트남 축구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10월 새 도전에 나섰다.

  ▷축구는 잘하지 못해도 그 열기만큼은 뜨거운 베트남 국민들은 한국의 3부 리그 출신 대표팀 감독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 전까지 쓰던 포백(4명 수비) 시스템을 쓰리 백으로 바꾸자 갑작스런 전술 변화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이 전술로 보란 듯 23일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시켰다.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 성적이다. 2002년 한국의 광희가 베트남에서 재현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베트남 주요 산물인 쌀을 빗댄 ‘쌀딩크’라는 별명도 생겼다.

  ▷박 감독은 선전(善戰)의 원동력으로 베트남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중국에도 당당하게 맞선 나라가 베트남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도 의지와 근면이다.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고 베트남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동남아 국가다. 돈독해지는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 박 감독의 ‘매직’이 힘을 더했다. 베트남은 27일 우즈베키스탄과 결승전을 치른다.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박 감독도 아직은 배가 고프다. (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