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누구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그의 첫 유성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에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독재국가 토매니아의 지도자 힌켈과 똑 닮은 이발사 찰리. 겉모습 때문에 대중에게 힌켈로 오인돼 단상에 오른 찰리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독재자’의 연설과는 동떨어진, 이 유명한 ‘평화 연설’을 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한 복장과 제스처, 하지만 되레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연설을 통해 독일 국민을 사로잡은 독재자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대목이다. 일본 극작가 오노 히로유키의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에는 채플린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영화는 탁월한 연설로 군중 심리를 사로잡은 뒤 독재자가 된 히틀러를 비판한 것이다. 히틀러라고 독재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의 환심을 샀다. 기존 정치 세력은 이런 히틀러를 꼭두각시 총리로 내세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자 히틀러가 본색을 드러냈다.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금지하고, 차례로 정적(政敵)을 숙청했다.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하고는 1934년 전권을 행사하는 총통에 오른다.
▷독재자의 탄생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고 집권하지만 집권 후에는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폭정을 휘두른다. 15일 군부 쿠데타로 37년 권좌에서 쫓겨나 가택 연금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도 비슷하다. 그는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하기까지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독립영웅이었다.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된 뒤에도 초기에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지만, 1987년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6년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꾼 뒤에는 독재자로 돌변했다.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김일성’으로도 불린다. 독립운동 때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은 그는 1980년 방북해 김일성의 ‘유일 독재’와 ‘우상화 정책’을 배웠다.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동상을 세우며 김일성 따라하기에 나섰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추모위원회를 꾸렸을 정도로 무가베의 김일성 숭배는 유명하다. 김정일에게는 2010년 야생동물 한 쌍씩을 선물하려다 국제환경단체의 비판에 무산된 적이 있고, 2014년에는 김정은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동상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서 통치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공통점이다.
▷독재자(dictator)라는 단어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관직 ‘딕타토르(독재관·獨裁官)’에서 유래했다. 로마는 국가 비상사태를 맞으면 전권을 행사하는 독재관을 임명했다. 신속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치다. 독재관이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마는 현명했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독재관은 물러났다. 초기 독재관의 임기는 6개월을 넘지 않았고 후기로 가더라도 1년이 최장이었다. 클라우디오 술라는 임기가 없는 독재관을 맡기도 했지만 2년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공화정 말기 줄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에 올라 이 전통을 깼다가 “황제가 되려 한다”는 비난 속에 암살당했다. (171116)
- 오늘 여행 : Verona
베로나 방문은 두 차례. 첫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에는 14년의 간격이 있다.
베로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 오페라다.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 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로미오의 집’과 ‘줄리엣의 무덤’도 있다지만 줄리엣의 집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줄리엣의 집에는 그 유명한 발코니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없다. 줄리엣의 유적들도 모두 20세기 초에 베로나시가 ‘지정’한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명성에 기댄 상술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러브 스토리의 배경은 스스로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쌓아갔다. 예를 들어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생긴다는 전설 따위 들이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만지고 왔다.) 지금은 러브 스토리의 낭만은 사라지고 그저 한번쯤 로미오나 줄리엣이 되보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됐다.
베로나는 야외 오페라의 고장이기도 하다. 1세기 초에 만들어진 베로나 아레나에서 매년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상대 검투사와 싸우거나, 맹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던 피비린내 나던 장소가 예술의 전당으로 거듭났다. ‘공연장’ 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여흥의 수단으로 보면 천지차이다.
타원형인 베로나 아레나는 긴 쪽 길이가 140m인 축구장 크기의 대형 건축물. 지어진 지 2000년이 됐지만 여전히 끄떡없이 한번에 관객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십여 년 전에는 운이 좋아 이 야외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감상한 오페라는 아이다였는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의 연출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를 봤던 여운은 지금도 묘하게 남아있다.
두 번째 방문은 오래전 가봤던 명소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추억을 곱씹을 기회였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거리가 불과 십여 년 만에 변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