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Santa Fe, NM

Santa Fe, NM

#1 빌리 더 키드

  거친 시대에는 엉뚱하게 미화되거나 신화화되는 범죄자들이 있다. 평화로운 시절과는 기준이 다르다. 19세기 말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5명(또는 그 이상)의 매춘부를 살해하고도 단지 붙잡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신비스런 인물로 묘사된다. 잭 더 리퍼는 범죄 현장에 “유대인은 비난받을 일이 없다(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는 문구를 남겼다고 하는데, 과감하게 스스로의 자취를 표시하는 범인의 모습에서 대중은 공포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잭 더 리퍼는 이후 연구서와 소설을 포함한 책과 영화, 뮤지컬의 단골 소재로 확대 재생산됐다.
  잭 더 리퍼의 살인 행각(1888년)과 비슷한 시기, 정확히는 11년 뒤 미국 와이오밍에서는 ‘부치 캐시디 와일드 번치(Butch Cassidy’s Wild Bunch)’ 라는 무법자 집단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폴 뉴먼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 게다가 그들 못지않게 매력적인 여배우 캐서린 로스와의 로맨스까지 더해진 영화로만 보면 매우 낭만적인 존재들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강도 행각을 일삼던 악질 범죄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역시 미화돼 재생산된 경우다.
  악당의 미화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이 악당을 빼놓는다면 섭섭할 수도 있겠다. 잭 더 리퍼보다 10년쯤 먼저 활동했던, 하지만 살인 건수로만 따지면 잭 더 리퍼를 훨씬 능가하는 서부시대 무법자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역시 전설로 남은 악당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헨리 맥카티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스스로를 윌리엄 H. 보니라는 이름으로 부른,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빌리 더 키드’로 더 유명한 이 총잡이는 죽은 뒤 그림과 시, 책,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부활했다. 이미 1930년에 ‘빌리 더 키드’라는 영화가 나왔고, 1941년에는 ‘산타페의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in Santa Fe)’라는 영화도 나왔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영화 ‘영 건(Young Gus·1988)’에서 빌리 더 키드 역할을 맡았다. 이런 것만 봐도 미국인들이 얼마나 빌리 더 키드를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잭 더 리퍼의 편지나 부치 캐시디 일당의 열차 강도처럼. 빌리 더 키드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링컨 카운티 전투다. 영화 ‘영 건’은 이 전투를 소재로 만들었다. 뉴멕시코 지역 상권을 두고 벌어진 신구 세력의 다툼인데, 빌리 더 키드는 열세인 쪽에 서서 뛰어난 총격 실력을 발휘하며 일약 영웅으로 부상했다.
  굳이 여기서 빌리 더 키드의 나머지 인생을 옮겨 적지 않더라도, 그가 뛰어난 총잡이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1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21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무법자를 굳이 후세가 옹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부 개척시대의 향수를 간직한 미국인들에게 ‘빌리 더 키드’는 범죄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할 대상임은 충분하다. 이런 점을 노리고 뉴멕시코주는 빌리 더 키드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실제로 빌리 더 키드가 뉴멕시코주에 산 것은 9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하긴 나이로 보면 거의 반평생을 산 셈이다. 뉴멕시코주의 주도(州都)가 산타페다.


# 2. 조지아 오키프

  그의 꽃 그림이나 짐승 해골 그림에서 관능미를 찾으려고 했다면, 그의 인생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꽃은 꽃처럼, 뼈는 뼈처럼 그렸으나 꽃 이상, 뼈 이상, 사막 이상의 가치를 표현한 화가. 시대의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화가. 오키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의 연인이었는지. 예술의 도시 산타페를 만든 고독한 삶.




# 3. 미야자와 리에

  산타페에서 미야자와 리에를 떠올리는 세대라면 조금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1991년 나온 이 사진집은 엄밀하게는 사진작가인 키신 시노야마의 책이지만, 피사체인 미야자와만 부각됐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사진집으로 미야자와는 일약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됐지만,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다카노하나와의 파문 등 여러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스타가 아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2014)’나 ‘종이달(2015)’을 보면, 엄마 역할, 주부 역할이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그렇다고 ‘아줌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중년 여성은 아니다. 목욕탕집 여주인을 연기해도(행복 목욕탕·2017) 묘한 매력을 주는 중년. ‘산타페’의 분위기가 여전히 조금은 남아 았다. 아도비 건축물과 어울리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