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9일 화요일

'로켓맨' 김정은

‘로켓맨’ 김정은

▷구효서 작가의 단편소설 ‘별명의 달인’에는 중학생 시절 친구들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내 별명을 붙이는 ‘라즈니시’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라즈니시는 별명에 대해 친구들에게 따로 설명을 하지 않지만,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토를 달지도 않았다. 그 만큼 절묘한 별명 짓기의 달인이랄까. 작가는 라즈니시가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았기 때문에’ 별명을 잘 지었다고 설명한다. 소설 속에는 ‘구절판 개고기’나 ‘개발길질’, ‘나무젓가락1’, ‘나무젓가락2’ 같은 독특한 별명이 나온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명’한 것이거나, 어쩌면 작가의 학창 시절 실제로 주변에서 불렸던 친구들의 별명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별명이 난무하는 학교만큼 별명이 많은 곳이 정치계다. 정치인에게 별명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일 수도 있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도 있어서다. 대부분 정치인은 긍정적, 부정적 의미의 별명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하다는 의미에서 ‘고구마’나 ‘고답이’라고 불렸던 것이 한 사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한 때 잘 나갈 때는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지만, 당선된 후에는 ‘수첩공주’나 ‘불통공주’가 별명이었다. 정치인 별명은 대부분 대중이나 언론이 붙여준 것이다.

▷다른 사람의 별명을 직접 만드는 정치인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라즈니시 같은 ‘별명의 달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적(政敵)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성격이나 외형적 특징을 잡은 별명이 아니라, 깎아내리기 위한 별명이라는 점이 라즈니시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화당 경선 토론에서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을 ‘꼬마 마코(Little Marco)’라고 불렀다. 지명도가 낮다는 것을 비꼰 것이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거짓말쟁이 테드(Lyin’ Ted)’라는 별명을 붙였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는 ‘비뚤어진 힐러리(Crooked Hillary)’ ‘썩은 힐러리(Rotten Hillary)’라는 별명으로 이메일 스캔들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격했다.

▷이런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로켓맨(Rocket Man)’으로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한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문 대통령에게 ‘로켓맨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봤다”고 적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단지 알파벳 아홉 글자로 대통령은 김정은을 조롱하고 북한 정권의 미사일 무기를 하찮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엘튼 존의 유명한 노래를 떠올리게도 한다”고 했다. 로켓맨은 엘튼 존이 1972년 발표한 노래 제목이다. 우주에서 지구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우주비행사(로켓맨)의 독백이 가사 내용이다.

▷트럼프의 트윗 이후 미국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에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가사 중 ‘혼자서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Burnin’ out this fuse, up here alone)’는 부분이 김정은을 빗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화성은 애 키우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Mars ain't the kind of place to raise your kids)’라는 구절을 ‘북한은 애 키우기 적당한 곳이 아니야(N.K. ain't the kind of place to raise your kids)’라고 해석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엘튼 존의 명곡을 김정은과 비교해 망쳐버렸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온 것을 보면, 이번에는 별명을 썩 잘 붙인 것 같지는 않다. (170918)


2017년 9월 14일 목요일

NFL의 한국인 키커

  미국 프로미식축구인 NFL에도 외국인(미국 기준으로 외국인) 또는 외국 태생 선수들이 없지는 않다. 지금은 외국인 선수가 50명 정도가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계(또는 출생)도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선수를 꼽으라면 ‘슈퍼볼 MVP’ 하인즈 워드일게다. 그 외에도 대학에서는 주목받았으나 단 한 시즌만에 프로 경력을 마감(확실치는 않음)한 존 리라는 ‘비운의 키커’가 있고, 또 몇 명의 한국계 선수들이 더 있다. 하인즈 워드와 존 리는 한국 출생이기는 했지만 한국 국적은 아니었다.

  올 시즌 처음 NFL에 한국인 선수가 데뷔했다. NFL 중계를 볼 기회가 많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관심을 갖고 볼 만 일이 생겼다. 생겼다. LA 차저스의 구영회라는 키커인데, 첫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니 마지막 필드골 실패(실수는 수비 라인이 한 것)가 옥의 티지만, 꽤 안정적으로 찬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저스는 원래 LA에서 출발했지만 오랫동안 샌 디에고를 연고지로 사용하다 다시 LA로 돌아갔다.

  원래 미식축구라는 게 미국 외에서는 인기가 그리 높지 않아서 야구나 축구처럼 외국인 선수가 많지 않다. 주요 미국 프로스포츠 가운데 외국인(또는 외국 태생) 선수 비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그래도 간혹 두각을 나타내는 외국인(또는 외국 태생) 선수들이 있다. 럭비 선수 출신을 제외하면, 특히 유명한 선수들은 스페셜 팀, 그 중에서도 키커가 눈에 띈다.  아마도 축구나 격투기처럼 다른 종목에서 ‘차는 훈련’을 해 온 선수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외국 태생 키커가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이한 것은 역대 가장 유명한 두 명의 키커가 모두 외국 태생이라는 점이다. 덴마크 출신인 Morten Andersen(모르텐 안데르센이라고 읽나)과 남아공 출신 개리 앤더슨(이라고 읽을 것 같음, Gary Anderson)인데, 나란히 역대 스코어 랭킹 1, 2위다. 찾아보니 Andersen이 2544점, Anderson이 2434점을 올렸다. 둘 다 선수생활을 오래했는데, Andersen이 25년, Anderson이 18년을 프로로 뛰었다. 아마도 자기 관리만 잘 하면, 다른 포지션과 달리 외부 충격이 적은 포지션 성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둘 다 1982년에 데뷔했는데, 선수 생활을 오래 해 준 덕에, 경기를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 난다. 여하튼 한국인 구영회도 언젠가 이런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 이름을 올렸으면 하는데, 존 리라는 어정쩡한 선례가 있으므로 어찌될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존 리가 뛰었을 때는 너무 예전이어서 플레이는 기억나지 않고 신문에서 읽은 기억은 난다.

  참, 하나 더. 좀 다른 이야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키커는 플레이스키커를 의미한다. 누가(홀더) 잡아준 공을 차는 것. 스스로 공을 들고 차는 펀터(Punter)와는 구분되는데, 키커가 공을 ‘깔끔하게’ 차야한다면, 펀터는 공을 ‘지저분하게’ 그리고 ‘적당히’ 차야 잘 차는 것이다. 무조건 멀리 차는 것이 아니라 엔드라인 끝까지만 가야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제대로 잡지 못하게 차는 것도 중요하고.

  이처럼 차는 선수도 구분될 정도로 분업화가 뚜렷한 것이 미식축구인데, 공을 차는 선수를 위해 뒤로 공을 던져주는 선수도 따로 포지션이 있다. 롱 스내퍼라는 포지션이다. 평소 공격을 할 때는 센터가 쿼터백에게 가랑이 사이로 짧게 스냅을 해주고 블로킹에 들어가는데 비해, 롱 스내퍼는 키커에게 멀리 던져주는(그래서 롱 스내퍼) 것이 주요 역할이다. 롱 스내퍼는 필드골이나 펀트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별로 티가 안 나는 포지션.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아마도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롱 스내퍼는 존 도렌보스일텐데, 그건 플레이 때문이 아니라 필라델피아 이글스 선수 시절 아메리카스 갓 탤런트에 마술사로 출연해 결승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뉴올리언스 세인츠로 이적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