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박항서, 끝나지 않은 기적
선수 때부터 머리숱이 적었다. 대머리 미드필더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에 있었다. 지네딘 지단이 아니라 박항서다. 미드필더가 링커로 불리던 시절, 팬들은 악의(惡意)없이 그를 ‘대머리 링커’로 불렀다. 단신(1m66)의 약점을 부지런한 몸놀림으로 극복해 국가대표로도 뛰었다. 1988년 은퇴 뒤 한 동안 잊혀졌던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폴란드 전 골을 넣은 황선홍이 달려와 코치인 그를 끌어 않은 명장면 때문이다.
▷감독 인생은 화려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물려받았지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감독으로 1부 리그 우승도 없었다. 급기야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에 밀려 몇 년간 실업자로 살기도 했다. 국내 3부 리그격인 창원시청을 지도할 때 베트남 축구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 10월 새 도전에 나섰다.
▷축구는 잘하지 못해도 그 열기만큼은 뜨거운 베트남 국민들은 한국의 3부 리그 출신 대표팀 감독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 전까지 쓰던 포백(4명 수비) 시스템을 쓰리 백으로 바꾸자 갑작스런 전술 변화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그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극대화한 이 전술로 보란 듯 23일 베트남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시켰다.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 성적이다. 2002년 한국의 광희가 베트남에서 재현됐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베트남 주요 산물인 쌀을 빗댄 ‘쌀딩크’라는 별명도 생겼다.
▷박 감독은 선전(善戰)의 원동력으로 베트남 선수들의 강한 정신력을 꼽았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중국에도 당당하게 맞선 나라가 베트남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도 의지와 근면이다. 한국은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고 베트남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동남아 국가다. 돈독해지는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 박 감독의 ‘매직’이 힘을 더했다. 베트남은 27일 우즈베키스탄과 결승전을 치른다.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박 감독도 아직은 배가 고프다. (180124)
2018년 1월 27일 토요일
2018년 1월 22일 월요일
테니스史 새로 쓴 정현
테니스史 새로 쓴 정현
여섯 살 소년은 유난히 눈을 자주 깜빡였다. TV를 보면서도 눈을 찡그렸다. 걱정이 된 부모가 정현의 손을 끌고 안과를 찾았다. 검진 결과 약시. 야외활동을 하면서 녹색을 많이 보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에 부모는 소년에게 테니스 라켓을 건넸다. 보기 드문 ‘안경잡이’ 테니스 선수 정현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다. 테니스 지도자인 아버지의 핏줄까지 물려받은 정현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정현의 장점은 빠른 공을 눈으로 쫓아 반응하는 동체시력(動體視力)이다. 역설적이지만 정현의 동체시력을 키운 것은 약시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보통 사람보다 더 집중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체시력이 발달했다”는 것이 정현의 어머니 김영미 씨의 설명이다. 여기에 약점으로 지적됐던 포핸드와 서브까지 보완해 괄목상대할 성장을 이뤄냈다.
▷정현이 만 11세 되던 2007년, 이형택이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US오픈 테니스 16강에 진출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고 자란 ‘이형택 키드’ 정현이 기어이 일을 냈다. 정현은 22일 호주 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8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정현 스스로 ‘우상’이라고 부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세계랭킹 14위). 무려 223주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켰던 강자다. 정현은 이날 자신의 두 우상을 한꺼번에 넘어섰다.
▷어린 선수들은 우상을 바라보며 동기를 얻는다.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은 이제 다음 세대 골퍼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세리 키즈’를 넘어 ‘인비 키즈’라는 말도 나왔다. 과거 어린 투수들이 선호하는 등번호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1번이었지만,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장 이후 61번으로 바뀌었다.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트 1인자인 유영(14)은 비록 나이제한에 걸려 평창겨울올림픽은 출전하지 못하지만 4년 뒤 베이징 대회를 준비하는 ‘연아 키드’다. 테니스계에서도 언젠가 ‘정현 키즈’가 두각을 나타낼 날이 오겠지만 그 보다 먼저 정현이 승승장구해 ‘테니스 불모지’ 한국에서 역사를 계속 써갔으면 한다.
(180122)
여섯 살 소년은 유난히 눈을 자주 깜빡였다. TV를 보면서도 눈을 찡그렸다. 걱정이 된 부모가 정현의 손을 끌고 안과를 찾았다. 검진 결과 약시. 야외활동을 하면서 녹색을 많이 보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에 부모는 소년에게 테니스 라켓을 건넸다. 보기 드문 ‘안경잡이’ 테니스 선수 정현이 운동을 시작한 계기다. 테니스 지도자인 아버지의 핏줄까지 물려받은 정현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정현의 장점은 빠른 공을 눈으로 쫓아 반응하는 동체시력(動體視力)이다. 역설적이지만 정현의 동체시력을 키운 것은 약시다. “시력이 좋지 않아 사물을 볼 때 보통 사람보다 더 집중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동체시력이 발달했다”는 것이 정현의 어머니 김영미 씨의 설명이다. 여기에 약점으로 지적됐던 포핸드와 서브까지 보완해 괄목상대할 성장을 이뤄냈다.
▷정현이 만 11세 되던 2007년, 이형택이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US오픈 테니스 16강에 진출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고 자란 ‘이형택 키드’ 정현이 기어이 일을 냈다. 정현은 22일 호주 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8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정현 스스로 ‘우상’이라고 부른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세계랭킹 14위). 무려 223주간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켰던 강자다. 정현은 이날 자신의 두 우상을 한꺼번에 넘어섰다.
▷어린 선수들은 우상을 바라보며 동기를 얻는다.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은 이제 다음 세대 골퍼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세리 키즈’를 넘어 ‘인비 키즈’라는 말도 나왔다. 과거 어린 투수들이 선호하는 등번호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1번이었지만, 메이저리거 박찬호 등장 이후 61번으로 바뀌었다.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트 1인자인 유영(14)은 비록 나이제한에 걸려 평창겨울올림픽은 출전하지 못하지만 4년 뒤 베이징 대회를 준비하는 ‘연아 키드’다. 테니스계에서도 언젠가 ‘정현 키즈’가 두각을 나타낼 날이 오겠지만 그 보다 먼저 정현이 승승장구해 ‘테니스 불모지’ 한국에서 역사를 계속 써갔으면 한다.
(180122)
중국식 규제
중국식 가상화폐 규제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높아졌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기에 깊어졌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진(秦)의 재상 이사가 진왕 영정(훗날 시황제)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외국 출신 관리를 내쫓는 ‘축객령’을 거둬들이고 문물과 인재를 두루 포용하라는 내용이다. 이를 받아들인 진왕은 개방·개혁 정책으로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통일이 되자 반대 목소리를 근절한다며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렀다.
▷역사는 현재의 반영이다. 이전에도 개방과 규제를 병행하는 정책의 뿌리는 오래됐다. 중국은 신사업 규제를 풀어 빠른 시간에 안정된 스타트 업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한국이 최근에야 집중 육성하겠다는 드론은 이미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분야다. 기업가치 59조 원이 넘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은 한국에서는 아예 시작도 못하는 차량공유 서비스 회사다. 사업은 허용하되 문제가 생기면 규제한다는 ‘사후규제’가 정책의 원칙이다.
▷중국은 다양한 신사업에 대해 관대하지만, 체제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분야는 강력히 통제한다. 일부 해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막는 인터넷검열 ‘만리방화벽(The Great Firewall)’도 명분은 ‘유해사이트 차단’이지만, 실제로는 온라인상의 체제위협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이 방화벽을 피해 해외사이트에 접속하는 프로그램을 판매한 사업자가 징역 5년 6개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중국이 지난해 9월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통화정책과 조세권, 위안화 해외반출 금지 등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폐쇄된 중국거래소들이 개인간거래(P2P) 사이트를 열어 거래를 계속하자 중국은 15일 P2P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차단할 계획을 밝혔다.
▷중국의 초강력 규제 방침에 가상화폐 국제시세가 급락했다. 비트코인은 17일 하루 만에 28%나 떨어졌다. 김동연 부총리가 16일 “거래소 폐쇄 옵션은 살아있다”고 말한 것도 국내는 물론, 국제시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상화폐의 미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일치한다.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혁신 기술의 싹을 틔우려고 하기보다 강력한 통제 방침을 내비친 김 부총리의 발언은 그래서 씁쓸하다. ‘중국식 규제개혁’을 본받으라고 했더니 ‘중국식 규제’만 배운 것 같다.(180117)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높아졌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기에 깊어졌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진(秦)의 재상 이사가 진왕 영정(훗날 시황제)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외국 출신 관리를 내쫓는 ‘축객령’을 거둬들이고 문물과 인재를 두루 포용하라는 내용이다. 이를 받아들인 진왕은 개방·개혁 정책으로 천하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통일이 되자 반대 목소리를 근절한다며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렀다.
▷역사는 현재의 반영이다. 이전에도 개방과 규제를 병행하는 정책의 뿌리는 오래됐다. 중국은 신사업 규제를 풀어 빠른 시간에 안정된 스타트 업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한국이 최근에야 집중 육성하겠다는 드론은 이미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한 분야다. 기업가치 59조 원이 넘는 디디추싱(滴滴出行)은 한국에서는 아예 시작도 못하는 차량공유 서비스 회사다. 사업은 허용하되 문제가 생기면 규제한다는 ‘사후규제’가 정책의 원칙이다.
▷중국은 다양한 신사업에 대해 관대하지만, 체제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분야는 강력히 통제한다. 일부 해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막는 인터넷검열 ‘만리방화벽(The Great Firewall)’도 명분은 ‘유해사이트 차단’이지만, 실제로는 온라인상의 체제위협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이 방화벽을 피해 해외사이트에 접속하는 프로그램을 판매한 사업자가 징역 5년 6개월 중형을 선고 받았다.
▷중국이 지난해 9월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통화정책과 조세권, 위안화 해외반출 금지 등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폐쇄된 중국거래소들이 개인간거래(P2P) 사이트를 열어 거래를 계속하자 중국은 15일 P2P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차단할 계획을 밝혔다.
▷중국의 초강력 규제 방침에 가상화폐 국제시세가 급락했다. 비트코인은 17일 하루 만에 28%나 떨어졌다. 김동연 부총리가 16일 “거래소 폐쇄 옵션은 살아있다”고 말한 것도 국내는 물론, 국제시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상화폐의 미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그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일치한다.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흡수해 혁신 기술의 싹을 틔우려고 하기보다 강력한 통제 방침을 내비친 김 부총리의 발언은 그래서 씁쓸하다. ‘중국식 규제개혁’을 본받으라고 했더니 ‘중국식 규제’만 배운 것 같다.(180117)
작심삼일
새해결심과 작심삼일
페이스북을 통해 1월 한 달 동안 금주(禁酒)한다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중 한 달만이라도 간을 쉬게 해주자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를 공식적 캠페인으로 발전시킨 것은 영국 음주 문제 예방 단체 ‘Alcohol Concern’이다. 이 단체 소속 에밀리 로빈슨이 2011년 하프 마라톤 출전을 위해 ‘1월 금주’를 실천했던 경험과 효과를 떠올리며 이듬해 캠페인을 시작했다.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지난해 뉴욕타임스 건강섹션에서 가장 많이 읽힌 ‘나이 드는 사람을 위한 운동법’ 기사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나이가 들면 개구리모양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근육이 힘없이 빠져버리는데 자전거타기같은 운동을 4분한 뒤 3분 쉬는 것을 3차례 이상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실험집단과 비교한 결과 적당한 운동 또는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유전자 활동 변화 측면에서 훨씬 나았다는 것. 특히 나이 들수록 격렬한 운동이 노화세포를 ‘교정’한다는 결과가 눈에 띈다.
▷금주와 운동은 다이어트, 금연과 함께 새해 결심의 단골손님이다. 공통 키워드는 건강이다. 예전에는 금연, 금주의 비중이 높았지만 점차 다이어트와 운동에 순위가 밀리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의 61%가 다이어트를, 이어 32%가 운동을 ‘단골 새해계획’으로 꼽았다. 하지만 응답자 77%가 석 달 내 새해 계획이 무너진다고 답했다. 1월 안에 실패한다는 응답도 27%나 됐다.
▷작심삼일의 이유로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디스테노 박사는 “미래의 만족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제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스트레스를 풀 해결 방법으로 이성이 아니라 감사와 연민, 자부심 같은 ‘감정’을 제시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내가 달성한 소박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새해 결심 성공법이라니 뜻밖에 쉽지 않은가. (180101)
페이스북을 통해 1월 한 달 동안 금주(禁酒)한다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중 한 달만이라도 간을 쉬게 해주자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를 공식적 캠페인으로 발전시킨 것은 영국 음주 문제 예방 단체 ‘Alcohol Concern’이다. 이 단체 소속 에밀리 로빈슨이 2011년 하프 마라톤 출전을 위해 ‘1월 금주’를 실천했던 경험과 효과를 떠올리며 이듬해 캠페인을 시작했다.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지난해 뉴욕타임스 건강섹션에서 가장 많이 읽힌 ‘나이 드는 사람을 위한 운동법’ 기사를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 나이가 들면 개구리모양 팔다리가 가늘어지고 근육이 힘없이 빠져버리는데 자전거타기같은 운동을 4분한 뒤 3분 쉬는 것을 3차례 이상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실험집단과 비교한 결과 적당한 운동 또는 웨이트 트레이닝보다 유전자 활동 변화 측면에서 훨씬 나았다는 것. 특히 나이 들수록 격렬한 운동이 노화세포를 ‘교정’한다는 결과가 눈에 띈다.
▷금주와 운동은 다이어트, 금연과 함께 새해 결심의 단골손님이다. 공통 키워드는 건강이다. 예전에는 금연, 금주의 비중이 높았지만 점차 다이어트와 운동에 순위가 밀리고 있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의 61%가 다이어트를, 이어 32%가 운동을 ‘단골 새해계획’으로 꼽았다. 하지만 응답자 77%가 석 달 내 새해 계획이 무너진다고 답했다. 1월 안에 실패한다는 응답도 27%나 됐다.
▷작심삼일의 이유로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디스테노 박사는 “미래의 만족보다 현재의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제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스트레스를 풀 해결 방법으로 이성이 아니라 감사와 연민, 자부심 같은 ‘감정’을 제시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내가 달성한 소박한 성과를 자랑하는 것이 새해 결심 성공법이라니 뜻밖에 쉽지 않은가. (180101)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Santa Fe, NM
Santa Fe, NM
#1 빌리 더 키드
거친 시대에는 엉뚱하게 미화되거나 신화화되는 범죄자들이 있다. 평화로운 시절과는 기준이 다르다. 19세기 말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5명(또는 그 이상)의 매춘부를 살해하고도 단지 붙잡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신비스런 인물로 묘사된다. 잭 더 리퍼는 범죄 현장에 “유대인은 비난받을 일이 없다(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는 문구를 남겼다고 하는데, 과감하게 스스로의 자취를 표시하는 범인의 모습에서 대중은 공포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잭 더 리퍼는 이후 연구서와 소설을 포함한 책과 영화, 뮤지컬의 단골 소재로 확대 재생산됐다.
잭 더 리퍼의 살인 행각(1888년)과 비슷한 시기, 정확히는 11년 뒤 미국 와이오밍에서는 ‘부치 캐시디 와일드 번치(Butch Cassidy’s Wild Bunch)’ 라는 무법자 집단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폴 뉴먼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 게다가 그들 못지않게 매력적인 여배우 캐서린 로스와의 로맨스까지 더해진 영화로만 보면 매우 낭만적인 존재들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강도 행각을 일삼던 악질 범죄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역시 미화돼 재생산된 경우다.
악당의 미화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이 악당을 빼놓는다면 섭섭할 수도 있겠다. 잭 더 리퍼보다 10년쯤 먼저 활동했던, 하지만 살인 건수로만 따지면 잭 더 리퍼를 훨씬 능가하는 서부시대 무법자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역시 전설로 남은 악당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헨리 맥카티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스스로를 윌리엄 H. 보니라는 이름으로 부른,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빌리 더 키드’로 더 유명한 이 총잡이는 죽은 뒤 그림과 시, 책,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부활했다. 이미 1930년에 ‘빌리 더 키드’라는 영화가 나왔고, 1941년에는 ‘산타페의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in Santa Fe)’라는 영화도 나왔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영화 ‘영 건(Young Gus·1988)’에서 빌리 더 키드 역할을 맡았다. 이런 것만 봐도 미국인들이 얼마나 빌리 더 키드를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잭 더 리퍼의 편지나 부치 캐시디 일당의 열차 강도처럼. 빌리 더 키드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링컨 카운티 전투다. 영화 ‘영 건’은 이 전투를 소재로 만들었다. 뉴멕시코 지역 상권을 두고 벌어진 신구 세력의 다툼인데, 빌리 더 키드는 열세인 쪽에 서서 뛰어난 총격 실력을 발휘하며 일약 영웅으로 부상했다.
굳이 여기서 빌리 더 키드의 나머지 인생을 옮겨 적지 않더라도, 그가 뛰어난 총잡이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1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21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무법자를 굳이 후세가 옹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부 개척시대의 향수를 간직한 미국인들에게 ‘빌리 더 키드’는 범죄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할 대상임은 충분하다. 이런 점을 노리고 뉴멕시코주는 빌리 더 키드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실제로 빌리 더 키드가 뉴멕시코주에 산 것은 9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하긴 나이로 보면 거의 반평생을 산 셈이다. 뉴멕시코주의 주도(州都)가 산타페다.
# 2. 조지아 오키프
그의 꽃 그림이나 짐승 해골 그림에서 관능미를 찾으려고 했다면, 그의 인생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꽃은 꽃처럼, 뼈는 뼈처럼 그렸으나 꽃 이상, 뼈 이상, 사막 이상의 가치를 표현한 화가. 시대의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화가. 오키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의 연인이었는지. 예술의 도시 산타페를 만든 고독한 삶.
# 3. 미야자와 리에
산타페에서 미야자와 리에를 떠올리는 세대라면 조금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1991년 나온 이 사진집은 엄밀하게는 사진작가인 키신 시노야마의 책이지만, 피사체인 미야자와만 부각됐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사진집으로 미야자와는 일약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됐지만,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다카노하나와의 파문 등 여러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스타가 아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2014)’나 ‘종이달(2015)’을 보면, 엄마 역할, 주부 역할이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그렇다고 ‘아줌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중년 여성은 아니다. 목욕탕집 여주인을 연기해도(행복 목욕탕·2017) 묘한 매력을 주는 중년. ‘산타페’의 분위기가 여전히 조금은 남아 았다. 아도비 건축물과 어울리는 얼굴.
#1 빌리 더 키드
거친 시대에는 엉뚱하게 미화되거나 신화화되는 범죄자들이 있다. 평화로운 시절과는 기준이 다르다. 19세기 말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는 5명(또는 그 이상)의 매춘부를 살해하고도 단지 붙잡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신비스런 인물로 묘사된다. 잭 더 리퍼는 범죄 현장에 “유대인은 비난받을 일이 없다(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는 문구를 남겼다고 하는데, 과감하게 스스로의 자취를 표시하는 범인의 모습에서 대중은 공포를 느꼈을 지도 모른다. 잭 더 리퍼는 이후 연구서와 소설을 포함한 책과 영화, 뮤지컬의 단골 소재로 확대 재생산됐다.
잭 더 리퍼의 살인 행각(1888년)과 비슷한 시기, 정확히는 11년 뒤 미국 와이오밍에서는 ‘부치 캐시디 와일드 번치(Butch Cassidy’s Wild Bunch)’ 라는 무법자 집단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1969)’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폴 뉴먼이나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 게다가 그들 못지않게 매력적인 여배우 캐서린 로스와의 로맨스까지 더해진 영화로만 보면 매우 낭만적인 존재들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강도 행각을 일삼던 악질 범죄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들 역시 미화돼 재생산된 경우다.
악당의 미화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이 악당을 빼놓는다면 섭섭할 수도 있겠다. 잭 더 리퍼보다 10년쯤 먼저 활동했던, 하지만 살인 건수로만 따지면 잭 더 리퍼를 훨씬 능가하는 서부시대 무법자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역시 전설로 남은 악당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멕시코에서 생을 마감했다. 헨리 맥카티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스스로를 윌리엄 H. 보니라는 이름으로 부른,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빌리 더 키드’로 더 유명한 이 총잡이는 죽은 뒤 그림과 시, 책,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 부활했다. 이미 1930년에 ‘빌리 더 키드’라는 영화가 나왔고, 1941년에는 ‘산타페의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in Santa Fe)’라는 영화도 나왔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영화 ‘영 건(Young Gus·1988)’에서 빌리 더 키드 역할을 맡았다. 이런 것만 봐도 미국인들이 얼마나 빌리 더 키드를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다.
신화가 되기 위해서는 극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잭 더 리퍼의 편지나 부치 캐시디 일당의 열차 강도처럼. 빌리 더 키드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링컨 카운티 전투다. 영화 ‘영 건’은 이 전투를 소재로 만들었다. 뉴멕시코 지역 상권을 두고 벌어진 신구 세력의 다툼인데, 빌리 더 키드는 열세인 쪽에 서서 뛰어난 총격 실력을 발휘하며 일약 영웅으로 부상했다.
굳이 여기서 빌리 더 키드의 나머지 인생을 옮겨 적지 않더라도, 그가 뛰어난 총잡이면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1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21명 이상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무법자를 굳이 후세가 옹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부 개척시대의 향수를 간직한 미국인들에게 ‘빌리 더 키드’는 범죄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할 대상임은 충분하다. 이런 점을 노리고 뉴멕시코주는 빌리 더 키드를 관광 상품으로 개발했다. 실제로 빌리 더 키드가 뉴멕시코주에 산 것은 9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하긴 나이로 보면 거의 반평생을 산 셈이다. 뉴멕시코주의 주도(州都)가 산타페다.
그의 꽃 그림이나 짐승 해골 그림에서 관능미를 찾으려고 했다면, 그의 인생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꽃은 꽃처럼, 뼈는 뼈처럼 그렸으나 꽃 이상, 뼈 이상, 사막 이상의 가치를 표현한 화가. 시대의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았기에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화가. 오키프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연인이었는지, 아니면 스티글리츠가 오키프의 연인이었는지. 예술의 도시 산타페를 만든 고독한 삶.
# 3. 미야자와 리에
산타페에서 미야자와 리에를 떠올리는 세대라면 조금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1991년 나온 이 사진집은 엄밀하게는 사진작가인 키신 시노야마의 책이지만, 피사체인 미야자와만 부각됐다.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사진집으로 미야자와는 일약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화제가 됐지만,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다카노하나와의 파문 등 여러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스타가 아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2014)’나 ‘종이달(2015)’을 보면, 엄마 역할, 주부 역할이 그렇게 어울릴 수 없다. 그렇다고 ‘아줌마’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중년 여성은 아니다. 목욕탕집 여주인을 연기해도(행복 목욕탕·2017) 묘한 매력을 주는 중년. ‘산타페’의 분위기가 여전히 조금은 남아 았다. 아도비 건축물과 어울리는 얼굴.
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독재자 // Verona
독재자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누구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그의 첫 유성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에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독재국가 토매니아의 지도자 힌켈과 똑 닮은 이발사 찰리. 겉모습 때문에 대중에게 힌켈로 오인돼 단상에 오른 찰리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독재자’의 연설과는 동떨어진, 이 유명한 ‘평화 연설’을 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한 복장과 제스처, 하지만 되레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연설을 통해 독일 국민을 사로잡은 독재자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대목이다. 일본 극작가 오노 히로유키의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에는 채플린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영화는 탁월한 연설로 군중 심리를 사로잡은 뒤 독재자가 된 히틀러를 비판한 것이다. 히틀러라고 독재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의 환심을 샀다. 기존 정치 세력은 이런 히틀러를 꼭두각시 총리로 내세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자 히틀러가 본색을 드러냈다.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금지하고, 차례로 정적(政敵)을 숙청했다.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하고는 1934년 전권을 행사하는 총통에 오른다.
▷독재자의 탄생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고 집권하지만 집권 후에는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폭정을 휘두른다. 15일 군부 쿠데타로 37년 권좌에서 쫓겨나 가택 연금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도 비슷하다. 그는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하기까지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독립영웅이었다.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된 뒤에도 초기에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지만, 1987년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6년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꾼 뒤에는 독재자로 돌변했다.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김일성’으로도 불린다. 독립운동 때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은 그는 1980년 방북해 김일성의 ‘유일 독재’와 ‘우상화 정책’을 배웠다.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동상을 세우며 김일성 따라하기에 나섰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추모위원회를 꾸렸을 정도로 무가베의 김일성 숭배는 유명하다. 김정일에게는 2010년 야생동물 한 쌍씩을 선물하려다 국제환경단체의 비판에 무산된 적이 있고, 2014년에는 김정은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동상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서 통치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공통점이다.
▷독재자(dictator)라는 단어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관직 ‘딕타토르(독재관·獨裁官)’에서 유래했다. 로마는 국가 비상사태를 맞으면 전권을 행사하는 독재관을 임명했다. 신속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치다. 독재관이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마는 현명했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독재관은 물러났다. 초기 독재관의 임기는 6개월을 넘지 않았고 후기로 가더라도 1년이 최장이었다. 클라우디오 술라는 임기가 없는 독재관을 맡기도 했지만 2년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공화정 말기 줄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에 올라 이 전통을 깼다가 “황제가 되려 한다”는 비난 속에 암살당했다. (171116)
- 오늘 여행 : Verona
베로나 방문은 두 차례. 첫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에는 14년의 간격이 있다.
베로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 오페라다.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 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로미오의 집’과 ‘줄리엣의 무덤’도 있다지만 줄리엣의 집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줄리엣의 집에는 그 유명한 발코니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없다. 줄리엣의 유적들도 모두 20세기 초에 베로나시가 ‘지정’한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명성에 기댄 상술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러브 스토리의 배경은 스스로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쌓아갔다. 예를 들어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생긴다는 전설 따위 들이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만지고 왔다.) 지금은 러브 스토리의 낭만은 사라지고 그저 한번쯤 로미오나 줄리엣이 되보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됐다.
베로나는 야외 오페라의 고장이기도 하다. 1세기 초에 만들어진 베로나 아레나에서 매년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상대 검투사와 싸우거나, 맹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던 피비린내 나던 장소가 예술의 전당으로 거듭났다. ‘공연장’ 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여흥의 수단으로 보면 천지차이다.
타원형인 베로나 아레나는 긴 쪽 길이가 140m인 축구장 크기의 대형 건축물. 지어진 지 2000년이 됐지만 여전히 끄떡없이 한번에 관객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십여 년 전에는 운이 좋아 이 야외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감상한 오페라는 아이다였는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의 연출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를 봤던 여운은 지금도 묘하게 남아있다.
두 번째 방문은 오래전 가봤던 명소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추억을 곱씹을 기회였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거리가 불과 십여 년 만에 변할 리 없었다.
“미안합니다. 나는 황제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누구를 다스리거나 정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그의 첫 유성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1940)’에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독재국가 토매니아의 지도자 힌켈과 똑 닮은 이발사 찰리. 겉모습 때문에 대중에게 힌켈로 오인돼 단상에 오른 찰리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독재자’의 연설과는 동떨어진, 이 유명한 ‘평화 연설’을 한다. 아돌프 히틀러와 비슷한 복장과 제스처, 하지만 되레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연설을 통해 독일 국민을 사로잡은 독재자 히틀러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대목이다. 일본 극작가 오노 히로유키의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에는 채플린이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히틀러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 영화는 탁월한 연설로 군중 심리를 사로잡은 뒤 독재자가 된 히틀러를 비판한 것이다. 히틀러라고 독재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의 환심을 샀다. 기존 정치 세력은 이런 히틀러를 꼭두각시 총리로 내세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정권을 잡자 히틀러가 본색을 드러냈다.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금지하고, 차례로 정적(政敵)을 숙청했다.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장악하고는 1934년 전권을 행사하는 총통에 오른다.
▷독재자의 탄생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에는 대중의 인기를 얻고 집권하지만 집권 후에는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폭정을 휘두른다. 15일 군부 쿠데타로 37년 권좌에서 쫓겨나 가택 연금된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도 비슷하다. 그는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하기까지 국내외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독립영웅이었다.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총리가 된 뒤에도 초기에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지만, 1987년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6년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꾼 뒤에는 독재자로 돌변했다.
▷무가베는 ‘아프리카의 김일성’으로도 불린다. 독립운동 때부터 북한의 지원을 받은 그는 1980년 방북해 김일성의 ‘유일 독재’와 ‘우상화 정책’을 배웠다. 자신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동상을 세우며 김일성 따라하기에 나섰다. 1994년 김일성이 죽자 추모위원회를 꾸렸을 정도로 무가베의 김일성 숭배는 유명하다. 김정일에게는 2010년 야생동물 한 쌍씩을 선물하려다 국제환경단체의 비판에 무산된 적이 있고, 2014년에는 김정은에게 500만 달러를 주고 동상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서 통치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공통점이다.
▷독재자(dictator)라는 단어는 고대 로마 공화정의 관직 ‘딕타토르(독재관·獨裁官)’에서 유래했다. 로마는 국가 비상사태를 맞으면 전권을 행사하는 독재관을 임명했다. 신속한 결정을 내리기 위한 조치다. 독재관이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마는 현명했다. 비상사태가 해결되면 독재관은 물러났다. 초기 독재관의 임기는 6개월을 넘지 않았고 후기로 가더라도 1년이 최장이었다. 클라우디오 술라는 임기가 없는 독재관을 맡기도 했지만 2년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공화정 말기 줄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에 올라 이 전통을 깼다가 “황제가 되려 한다”는 비난 속에 암살당했다. (171116)
- 오늘 여행 : Verona
베로나 방문은 두 차례. 첫 방문과 두 번째 방문 사이에는 14년의 간격이 있다.
베로나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고, 다른 하나는 야외 오페라다.
줄리엣은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 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로미오의 집’과 ‘줄리엣의 무덤’도 있다지만 줄리엣의 집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아니다. 줄리엣의 집에는 그 유명한 발코니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없다. 줄리엣의 유적들도 모두 20세기 초에 베로나시가 ‘지정’한 것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명성에 기댄 상술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러브 스토리의 배경은 스스로 살을 붙이고 이야기를 쌓아갔다. 예를 들어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생긴다는 전설 따위 들이다.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만지고 왔다.) 지금은 러브 스토리의 낭만은 사라지고 그저 한번쯤 로미오나 줄리엣이 되보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이 됐다.
베로나는 야외 오페라의 고장이기도 하다. 1세기 초에 만들어진 베로나 아레나에서 매년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린다.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상대 검투사와 싸우거나, 맹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몸부림치던 피비린내 나던 장소가 예술의 전당으로 거듭났다. ‘공연장’ 이라는 측면에서는 다를 게 없지만, 여흥의 수단으로 보면 천지차이다.
타원형인 베로나 아레나는 긴 쪽 길이가 140m인 축구장 크기의 대형 건축물. 지어진 지 2000년이 됐지만 여전히 끄떡없이 한번에 관객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십여 년 전에는 운이 좋아 이 야외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감상한 오페라는 아이다였는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의 연출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이 연출한 오페라를 봤던 여운은 지금도 묘하게 남아있다.
두 번째 방문은 오래전 가봤던 명소들을 스치듯 지나가며 추억을 곱씹을 기회였다.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거리가 불과 십여 년 만에 변할 리 없었다.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바비큐 小考
“교수님이 젊은 시절 텍사스에서 살아서 바비큐도 텍사스 식으로 주문했대요. 노스캐롤라이나식과는 다를 겁니다.”
한 미국인 교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들은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엄밀하게는 말은 알아들었지만 뜻을 몰랐다. 바비큐면 바비큐지 텍사스식은 뭐고, 캐롤라이나식은 뭐란 말인가. 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바비큐는 어느 동네 방식이었던 걸까.
그런데, 미국 주 하나 정도 크기(또는 그 보다 작은)인 한국에도 전라도식 김치, 경상도식 김치가 구분되는 마당에, 넓은 미국에서 지역에 따른 바비큐 구분이 없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터였다.
불에 고기를 굽는 바비큐는 사실 고기를 먹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회자(膾炙)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옛날에는 날고기 아니면 구운 고기였다. 찌거나 삶는 방식도 있겠지만, 역시 고기는 굽는 게 가장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했던 것 같다. 편한데다 맛도 있다. 카우보이들이 많은 미국에서 발달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 미국이라면, 한국의 고유한 요리로 주장하는 ‘불고기’도 결국 ‘특이한 바비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듯 하다. 식탁에서 직접 구워먹는 독특한 문화와 미리 양념을 재워두는 정성도, 바비큐의 배리에이션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돼지고기 바비큐라면 역시 슬라이스 보다는 잘게 찢은 풀드 포크(pulled pork)가 제 맛이다. 찾아본 바로는 멤피스(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캔자스시티(미주리), 센트럴 텍사스, 이스트 텍사스, 앨러배마 등이 저마다 독특한 바비큐를 자랑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식에도 이스트 스타일과 렉싱턴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맛을 글로 표현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여하튼 설명을 죽 보니, 주로 먹었던 것은 새콤한 식초향이 감도는 노스캐롤라이나 식이었던 것 같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바비큐 협회(NC Barbecue Society)’에서 선정한 ‘바비큐 트레일(Historic Barbecue Trail)’이 있을 정도로 바비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고장이다.
고기 자체를 중요시하는 텍사스식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스타일에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식도 궁금하긴 하다. 절충형도 있다. 앨라배마식은 텍사스와 노스캐롤라이나식의 중간쯤이라고 한다. 마요네즈와 식초를 섞은 소스로 만든 풀드 포크를 햄버거 빵에 넣어 먹는 샌드위치라는데, 버밍엄을 지나며 일부러 ‘바비큐 맛집’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허름한 가게. 여행안내 책자가 아니었으면 결코 지나가다 들를만한 외형은 아니었다. 반신반의하고 들어갔다 두 번 놀랐다. 첫째, 생각보다 손님이 많은데 놀랐고 둘째, 맛은 결코 ‘허름하지’ 않았던 데 놀랐다.
청계천 야시장 푸드트럭에서 오랜만에 풀드 포크 바비큐를 맛봤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미국 요리사가 만들어준다는 바비큐가 TV에 나온 뒤 인터넷에서도 유명해졌다. 예전 버밍엄의 샌드위치 맛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약간 느낌이 달랐다. 이건 도대체 어느 동네 식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입맛에 맞춘 ‘서울식’일 가능성이 높으니….
한 미국인 교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을 때 들은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엄밀하게는 말은 알아들었지만 뜻을 몰랐다. 바비큐면 바비큐지 텍사스식은 뭐고, 캐롤라이나식은 뭐란 말인가. 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바비큐는 어느 동네 방식이었던 걸까.
그런데, 미국 주 하나 정도 크기(또는 그 보다 작은)인 한국에도 전라도식 김치, 경상도식 김치가 구분되는 마당에, 넓은 미국에서 지역에 따른 바비큐 구분이 없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터였다.
불에 고기를 굽는 바비큐는 사실 고기를 먹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회자(膾炙)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옛날에는 날고기 아니면 구운 고기였다. 찌거나 삶는 방식도 있겠지만, 역시 고기는 굽는 게 가장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했던 것 같다. 편한데다 맛도 있다. 카우보이들이 많은 미국에서 발달한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런 미국이라면, 한국의 고유한 요리로 주장하는 ‘불고기’도 결국 ‘특이한 바비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듯 하다. 식탁에서 직접 구워먹는 독특한 문화와 미리 양념을 재워두는 정성도, 바비큐의 배리에이션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돼지고기 바비큐라면 역시 슬라이스 보다는 잘게 찢은 풀드 포크(pulled pork)가 제 맛이다. 찾아본 바로는 멤피스(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캔자스시티(미주리), 센트럴 텍사스, 이스트 텍사스, 앨러배마 등이 저마다 독특한 바비큐를 자랑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식에도 이스트 스타일과 렉싱턴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맛을 글로 표현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여하튼 설명을 죽 보니, 주로 먹었던 것은 새콤한 식초향이 감도는 노스캐롤라이나 식이었던 것 같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바비큐 협회(NC Barbecue Society)’에서 선정한 ‘바비큐 트레일(Historic Barbecue Trail)’이 있을 정도로 바비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고장이다.
고기 자체를 중요시하는 텍사스식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스타일에 머스터드소스를 곁들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식도 궁금하긴 하다. 절충형도 있다. 앨라배마식은 텍사스와 노스캐롤라이나식의 중간쯤이라고 한다. 마요네즈와 식초를 섞은 소스로 만든 풀드 포크를 햄버거 빵에 넣어 먹는 샌드위치라는데, 버밍엄을 지나며 일부러 ‘바비큐 맛집’을 찾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허름한 가게. 여행안내 책자가 아니었으면 결코 지나가다 들를만한 외형은 아니었다. 반신반의하고 들어갔다 두 번 놀랐다. 첫째, 생각보다 손님이 많은데 놀랐고 둘째, 맛은 결코 ‘허름하지’ 않았던 데 놀랐다.
청계천 야시장 푸드트럭에서 오랜만에 풀드 포크 바비큐를 맛봤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미국 요리사가 만들어준다는 바비큐가 TV에 나온 뒤 인터넷에서도 유명해졌다. 예전 버밍엄의 샌드위치 맛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약간 느낌이 달랐다. 이건 도대체 어느 동네 식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입맛에 맞춘 ‘서울식’일 가능성이 높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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