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0일 수요일

'공짜 점심'과 '미끼 상품' // New Orleans, LA

- 잡설 : ‘공짜 점심’과 ‘미끼 상품’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다. 당장은 공짜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대가가 있다. 그것도 공짜로 먹은 점심보다 더 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공짜 점심은 19세기 미국(특별히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유래됐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공짜 점심이 아니라 술에 끼워 파는 메뉴였다. 당시 식당들이 노동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한 방편이었는데, 점심을 공짜로 주는 대신 술을 함께 팔았다. 적당한 안주가 곁들여진 술 한 잔은 또 다른 한 잔을 끌어드리는 법이어서, 식당 주인으로서는 공짜 점심의 비용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지출이 늘어났다. 공짜로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점심이 곁들여진 비싼 주안상을 사는 셈이었다.
  여기서 유래된 공짜 점심이란 말은 이제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금융 상품의 수익과 리스크를 논하는데도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표현을 쓴다.
  공짜 점심은 미끼 상품(Loss Leader)과는 좀 다르다. 공짜 점심이 끼워 팔기의 현혹이라면, 미끼 상품은 호객의 현혹이다. 보통 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을 책정한 상품들이다. 일단 자기 상점으로 손님을 끌어오려는 의도에서 원가보다 싸게 판매하는 상품들이다. 한정 세일인 경우가 많다.
  공짜 점심과 달리 미끼 상품은, 그 자체만 산다고 해서 상점 주인이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묘해서, 미끼 상품에 혹해 일단 상점에 들어가고 나면, 뭐든지 사고 싶어진다. 결과로는 공짜 점심이나 미끼 상품이나 다를 바 없다.

  요즘 하도 공짜 점심이나 미끼 상품 같은 일이 많아 그적거린 잡설.




- 오늘 여행 : New Orleans, LA

  


과연 단어 몇 개로 설명이 될는지.

  재즈, 낭만, 남부의 맛, 천천히, 쉽게, Big Easy, 검보, 포보이, 크로피쉬, 크랩, 케이준,  베네와 카페오레, 프랜치쿼터, 버본 스트리트, 마르디그라스, 그리고 Mississippi. 










뉴올리언스 여행때 참고했던 소개글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이색지대(1973)와 웨스트월드(2016) // Monument Valley

- 잡설 : 이색지대(1973)와 웨스트월드(2016)

  영화 ‘이색지대(Westworld·1973)’를 동영상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은 HBO의 미드 ‘웨스트월드(Westworld·2016)’ 때문이다. 미드 웨스트월드가 이 영화의 리메이크 작이다.
  영화를 볼 때는 원제가 웨스트월드인 것도 몰랐다. 토요명화인지 명화극장인지, 또는 다른 특선영화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어린 시절 TV에서 이 영화를 매우 인상 깊게 본 기억만은 또렷하다. 무뚝뚝한 살인 로봇으로 나오는 율 브린너의 연기는 어린 시각에도 충격적이었다.
  다시 봐도 느낌은 처음 봤을 때와 비슷했다. 인간과 똑 같은 로봇이 등장해 온갖 모험과 향응을 제공하는 휴양지, 그곳을 찾는 인간들과 어느 순간 인간을 배신하는 로봇, 뒤따르는 위기와 공포. 40여 년 전이지만, 지금 그대로 영화에 적용한다고 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대단한 상상력이다. 미드의 소재로 ‘재활용’되더라도 손색없는 상상력이다. 미드를 보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각본과 감독이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것을 몰랐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는 훗날 ‘쥬라기 공원(1993)’을 통해 재현된다. 마이클 클라이튼은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이며 각본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어린 시절엔 매우 흥미진진하게 봤지만, 다시 보니 아무리 오래된 영화라고 해도 허술한 구석이 너무 많다. 하긴 영화의 완성도라는 게 기술의 발전과는 크게 관련은 없는 것이지만. 어쨌든 복선은 있지만 로봇이 오작동하는 계기를 설명하는 과정은 부족하다. 딱히 로봇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죽이는 것 같지도 않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주제로 한 영화치고는 긴박감도 모자란다. 그나마 율 브린너의 카리스마가 영화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여전히 멋지다.
  이 영화가 후에 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준 사실은 분명하지만, 영화 자체는 관객들이나 평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쥬라기 공원의 감독이 마이클 클라이튼이 아닌 스티븐 스필버그인 것은 매우 다행이다.)
  하나 더, 당시 ‘최첨단’으로 여겨졌던 영화의 장면들(로봇 율 브린너의 눈에 비친 픽셀 시각이나 복잡해 보이는 로봇 내부의 회로 같은)은 지금 보니 매우 허접하게 느껴진다. 최첨단 로봇을 수리하는데 시계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실소가 나왔다. 그 시절로서는 최선이었을 것이지만.




  미드 ‘웨스트월드 시즌 1’의 에피소드 10회를 거의 단숨(이라고는 해도 며칠 동안)에 독파했다. 소재는 같다. 인공지능 로봇이 모험과 향응을 제공하는 휴양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최첨단 놀이터에 기꺼이 돈을 쏟아 붓는 부자들. 시각적으로 더 발전하고, 상상력이 더 구체화됐을 뿐이다. 그것이 훨씬 재미를 키우는 요소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과정은 달랐다. 드라마는, 암묵적으로, 시청자들이 이미 영화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는 전제를 두고 출발한다. 리메이크 드라마의 장점이자 한계다. 그 경우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로봇의 배신을 줄거리의 앞쪽으로 끌어당기고 후반부는  위기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인간들의 분투기를 박진감 있게 표현하는 것. 다른 하나는, 로봇이 왜, 그리고 어떻게 배신하는 지의 과정을 꼼꼼히 설명해 개연성을 더하는 것. 전자는 영화에서 시도했던 것이고, 후자는 영화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드라마는 후자를 택했다. 로봇이 인간을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10화의 말미다. 시즌 2에 대한 ‘밑밥’이겠지만, 1개 시즌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도가 있다. (시즌 2가 기다려지기는 하는데, 이게 2018년 가을이나 돼야 방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그 때 쯤 이면 이 드라마에 대해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한 줄로 평을 하자면, 이야기는 정교하고 연출은 탄탄하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HBO가 심혈을 기울인 드라마인 만큼 캐스팅이 화려하다. 그리고 화려한 그들이 이름값을 한다.
  미국만큼 철저하게 시청률을 의식하고 드라마를 만드는 나라도 없을 것이라고 본다면, 드라마가 제시하는 철학적 성찰이나 인간 사이의 갈등 따위는 딱 보통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간혹 현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 점이 지나쳐 채널을 돌리게 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이제는 단순히 영화나 드라마가 천재 한 명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적어도 시즌 1)를 꿰뚫는 주제는 ‘로봇 디스토피아’에 대한 공포다. 그리고 그 공포를 유도하는 것은 인간이다. 자의(인 줄 알았으나 결국 누군가의 의도 때문에)로 ‘각성’하고 인간을 공격하는 살롱 여주인 메이브의 변화를 통해 공포가 점증적으로 표현된다. (로봇 디스토피아 또는 인공지능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이 드라마의 원작 영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례다. ‘에이리언:커버넌트(2017)’에서 인간을 숙주로 하는 외계 생명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AI 로봇의 각성이다. AI로봇 데이브는 스스로 생명체의 창조자가 되기로 하고 인간을 외계 생명체의 먹이로 던진다. 로봇 또는 컴퓨터의 반란을 다룬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에서 시작한다. ‘터미네이터(1984)’가 백미다. ‘매트릭스(1999)’에서 상상력이 더 발전했고 ‘아이, 로봇(2004)’은 영화적 흥미에 초점을 맞췄다. ‘엑스 마키나(2015)’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로봇의 부작용을 다룬다.)

  드라마를 보면서 몇 가지 소소한 재미도 찾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어서 실제 제작자의 의도와 맞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배경. 드라마 속 테마파크는 애리조나 주 모뉴먼트 밸리를 그대로 본떴다. 나바호 인디언의 성지로 불리는 모뉴먼트 밸리는 서부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유성영화 시대 서부극의 효시로 불리는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1939)’를 촬영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AI로봇들을 ‘연출’하는 테마파크 책임자의 이름이 포드(로버트 포드)인 것도 존 포드 감독에 대한 경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전개를 이끌면서 궁금증을 끌어내는 악당 로봇의 이름은 와이어트다. 서부 시대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이름을 땄을 가능성이 크다. ‘오케이목장의 결투(1957)’에서 버트 랭카스터가 맡았던 주인공이 와이어트 어프다. 사후의 전기(傳記)와 영화에서의 묘사 때문에 미국인에게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그의 행적에 대해 ‘명성’과 ‘악명’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 드라마가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무는 이름으로 와이어트라는 실제 인물의 이름을 차용한 것은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색지대’에 대한 오마쥬도 나온다. 슬쩍 지나가는 장면에서 언뜻 율 브린너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얼굴은 뚜렷하지 않지만 검은 옷을 입고 허리에 손을 얹은 자세가 영락없이 율브린너다. 율 브린너가 이색지대에서 입고 나왔던 검은 옷은, 그가 ‘황야의 7인(1960)’에서 입고 나왔던 것과 비슷하다. 황야의 7인에서 이색지대, 그리고 웨스트월드까지 오마쥬의 연속인 셈이다.



- 오늘 여행 : Monument Valley, AZ

  유타와 애리조나 접경 지역의 인디언 자치구. 이곳을 방문하기 전부터 미리 예약해서 반드시 The View Hotel 에서 묵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 호텔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호텔이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것도 한 이유지만, 그 보다는 이 호텔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뉴먼트 밸리의 석양과 야경 때문이다. 오래 전 예약이 아니면 호텔에 묵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쉽지 않다지만, 매일 전화기를 돌리는 노력과 마침 취소된 방이 생긴 행운이 겹친 덕에 예약할 수 있었다. 그 만한 보람이 있었다. 모뉴먼트 밸리 머리 위의 별들은 그 어느 곳에서 본 별보다 아름다웠다.



  석양에 모습을 드러낸 ‘쌍둥이 벙어리장갑(Twin Mittens)’. 몽환적이라는 단어만큼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다음날 렌트한 세단으로 도전한 모뉴먼트 밸리 투어. 보통은 SUV나 트럭이 필요하지만 세단으로 둘러보는 관광객들도 많다. 잠시 고운 흙바닥에 바퀴가 빠져 고생하기도 했지만, 이 대자연의 속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2017년 8월 9일 수요일

영구결번 //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NW

- 생각, 얕은 지식 : 영구결번

 영구결번(Retired Number)에 대한 글을 쓴 계기는 LG트윈스 이병규의 은퇴식이다. LG트윈스는 은퇴식을 하면서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잠시 주니치 드래건스로 ‘외유’를 하기는 했지만, LG트윈스 선수로 이병규의 공헌도는 매우 높다. 언뜻 ‘이병규만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첫 번째 영구결번인 김용수를 제외하면 LG에서 은퇴한 선수 중 이병규를 대체할만한 선수는 생각나지 않는다. (김용수는 은퇴 후가 좋지 않았다.) 인기로 따지면 ‘야생마’ 이상훈이나 ‘캐넌 히터’ 김재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두 선수 모두 LG트윈스를 떠나 유니폼을 벗었기에 트윈스에서 영구결번을 해줄 것 같지는 않다.
 참, 개인적으로 LG트윈스의 팬은 아니다. 영구결번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이야기를 찾아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첫 영구결번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메이저리그 첫 영구결번은 뉴욕 양키스의 1루수 루 게릭이 달았던 4번이다. 게릭은 1920년대와 30년대,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살인 타선’을 이끌던 강타자다. 또 14시즌 동안 2130경기에 연속 출장해 ‘철마(The Iron Horse)’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체력과 의지가 강했던 선수다. 그런 그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라는 어려운 이름의 희귀병에 걸려 갑자기 은퇴하게 된다. 1939년 은퇴식에서 양키스는 그의 업적을 기려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게릭은 은퇴 2년 뒤 사망했다. 운동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위축되는 이 병을 지금도 ‘루 게릭 병’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참고로 프로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는 미국 내셔널풋볼리그(NFL)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1번)다.

 첫 영구결번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한국 프로야구에도 있다. KBO리그 첫 영구결번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포수였던 고 김영신의 54번이다.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였던 김영신은 1985년 OB에 입단했지만 끝내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원년 우승팀 OB에는 당시 김경문, 조범현 같은 명포수가 즐비했다. 김영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입단 이듬해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사라는 추측과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함께 나왔다. OB 구단은 애도의 뜻으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구결번은 재키 로빈슨의 42번이다.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데뷔해 그라운드 안팎의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10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야구를 ‘백인의 스포츠’에서 ‘미국의 스포츠’로 만든 그의 업적을 기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97년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다만 그 이전까지 42번을 사용하던 선수들만은 계속해서 42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뉴욕 양키즈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지막으로 42번을 달고 뛴 선수다. 그 이후 42번은 아직까진 유일한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뉴욕 양키스는 마리아노 리베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리아노 리베라의 42번’도 따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로빈슨이 첫 경기를 치른 4월 15일이면,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가 평소에는 착용이 금지된 42번을 달고 그를 추모한다.

 LG 트윈스가 7월9일 ‘적토마’ 이병규의 은퇴식을 열고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BO리그 영구결번 선수 13명 가운데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는 김영신을 제외하곤 이병규가 유일하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팀 전력은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20170709 초고에서)


- 오늘 여행 :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NM


  다른 세계(異界)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런 관문을 통과해야 하지 않을까. 푸른 하늘 아래로 사방이 온통 흰색, 모래보다 고운 모래. 세상에도 이런 곳이 존재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 샌즈 국가기념물(물론, 미국 국가기념물)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곳이다. 흰 모래, 화이트 샌즈, 다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백사장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다. 석고 모래여서 눈처럼 하얀 빛깔을 띤다. 선글라스를 써도 하얀색이 느껴질 정도다. (몇몇 사진에서 모래 언덕이 누렇게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촬영자 혹은 카메라의 탓이다.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그닥 좋은 카메라도 아니니까.)
  모래가 무대라면 바람은 연출자다. 모래는 물결모양으로 일렁인다. 모래 산 주변으로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그리고 표지판에 적힌 동물 그림들은 이런 척박한 곳에도 생물이 산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늘을 만들어놓은 피크닉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아이들은 모래 산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방패처럼 생긴 플라스틱 썰매 바닥에 왁스를 칠하면 제법 잘 미끄러진다. 눈썰매만큼 미끄럽지는 않지만,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흰 모래 썰매장의 즐거움을 눈썰매에 비할 것은 아니다.




  앨버커키에서 차로 4시간 쯤 달려 도착했다. 좀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도중에 공사 구간이 있어 약간 지체됐던 기억이 있다. 앨라모고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2017년 8월 7일 월요일

생각 여행기 // Kitchener, ON, Canada

생각 여행기, 경험과 추억의 공유

이미 읽혔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겪고 느끼고, 읽고 생각한... 얕은 지식


- 오늘 여행 : Kitchener, ON, Canada / Cambridge, ON, Canada

 #Kitchener


  파란 하늘에 비친 구름이 유난히 또렷하던 여름날,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도시 키치너 인근을 지났다. 정확히 그 길이 있는 곳의 지명이 키치너인지 또는 케임브리지인지, 아니면 워털루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키치너라고 믿었던, 쭉 뻗은, 그러나 텅 빈 길이 이국의 느낌을 더했다. 길 끝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키치너의 원래 이름은 베를린이었다고 한다. 독일계 이민자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20세기 들어와 이름이 바뀌었다. 키치너 인근에는 런던이라는 도시가 있다. 워털루나 케임브리지도 영국의 지명이다. 케임브리지는 보스턴 인근에도 있다. 아마도 이민자들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 고향의 이름을 붙여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African Lion Safari at Cambridge, ON, Canada


 이 길을 지난 것은 키치너를 방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인근 케임브리지의 명물 동물원인 아프리칸 라이온 사파리(African Lion Safari)를 향하던 길이었다. 1969년 개장한 이 동물원은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는 대신 넓은 땅에 놓아 키운다. 에버랜드의 사파리와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에버랜드에서는 전용 사파리 버스를 타고 동물들을 구경하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내 차’를 몰고 동물들이 사는 곳을 지나갈 수 있다. 특별히 체증이 있거나, 급하게 뒤에서 밀어붙이는 차가 없다면, 시간을 두고 찬찬히 동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동물을 관찰하는 동안 차창을 열지 않는다는 규칙만 지키면 된다.
  이런 사파리 말고도 코끼리 공연이나 새 공연 같은 볼거리도 있다. 습지를 통과하는 기차도 타 볼만하다. 말하자면 동물원 테마파크인 셈인데, 하루 종일 둘러봐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다. 좁은 공간에 동물을 가둬 키우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모습이다. 땅이 넓고, 땅 값이 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 전에 자기 차를 몰고 자유롭게 다니더라도 동물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상식과 약속이 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