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결번(Retired Number)에 대한 글을 쓴 계기는 LG트윈스 이병규의 은퇴식이다. LG트윈스는 은퇴식을 하면서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잠시 주니치 드래건스로 ‘외유’를 하기는 했지만, LG트윈스 선수로 이병규의 공헌도는 매우 높다. 언뜻 ‘이병규만한 활약을 펼친 선수가 없었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첫 번째 영구결번인 김용수를 제외하면 LG에서 은퇴한 선수 중 이병규를 대체할만한 선수는 생각나지 않는다. (김용수는 은퇴 후가 좋지 않았다.) 인기로 따지면 ‘야생마’ 이상훈이나 ‘캐넌 히터’ 김재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두 선수 모두 LG트윈스를 떠나 유니폼을 벗었기에 트윈스에서 영구결번을 해줄 것 같지는 않다.
참, 개인적으로 LG트윈스의 팬은 아니다. 영구결번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어떤 이야기를 찾아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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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첫 영구결번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메이저리그 첫 영구결번은 뉴욕 양키스의 1루수 루 게릭이 달았던 4번이다. 게릭은 1920년대와 30년대,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살인 타선’을 이끌던 강타자다. 또 14시즌 동안 2130경기에 연속 출장해 ‘철마(The Iron Horse)’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체력과 의지가 강했던 선수다. 그런 그가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라는 어려운 이름의 희귀병에 걸려 갑자기 은퇴하게 된다. 1939년 은퇴식에서 양키스는 그의 업적을 기려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게릭은 은퇴 2년 뒤 사망했다. 운동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위축되는 이 병을 지금도 ‘루 게릭 병’이라고 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참고로 프로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 선수는 미국 내셔널풋볼리그(NFL)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1번)다.
첫 영구결번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한국 프로야구에도 있다. KBO리그 첫 영구결번은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포수였던 고 김영신의 54번이다.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였던 김영신은 1985년 OB에 입단했지만 끝내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했다. 원년 우승팀 OB에는 당시 김경문, 조범현 같은 명포수가 즐비했다. 김영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입단 이듬해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사라는 추측과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함께 나왔다. OB 구단은 애도의 뜻으로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영구결번은 재키 로빈슨의 42번이다.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데뷔해 그라운드 안팎의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10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야구를 ‘백인의 스포츠’에서 ‘미국의 스포츠’로 만든 그의 업적을 기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97년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다만 그 이전까지 42번을 사용하던 선수들만은 계속해서 42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뉴욕 양키즈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마지막으로 42번을 달고 뛴 선수다. 그 이후 42번은 아직까진 유일한 전 구단 영구결번이다. 뉴욕 양키스는 마리아노 리베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리아노 리베라의 42번’도 따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로빈슨이 첫 경기를 치른 4월 15일이면,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가 평소에는 착용이 금지된 42번을 달고 그를 추모한다.
LG 트윈스가 7월9일 ‘적토마’ 이병규의 은퇴식을 열고 그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BO리그 영구결번 선수 13명 가운데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는 김영신을 제외하곤 이병규가 유일하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팀 전력은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20170709 초고에서)
- 오늘 여행 :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White Sands National Monument, NM
다른 세계(異界)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이런 관문을 통과해야 하지 않을까. 푸른 하늘 아래로 사방이 온통 흰색, 모래보다 고운 모래. 세상에도 이런 곳이 존재했다.
미국 뉴멕시코주 화이트 샌즈 국가기념물(물론, 미국 국가기념물)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곳이다. 흰 모래, 화이트 샌즈, 다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백사장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다. 석고 모래여서 눈처럼 하얀 빛깔을 띤다. 선글라스를 써도 하얀색이 느껴질 정도다. (몇몇 사진에서 모래 언덕이 누렇게 보이는 것은, 전적으로 촬영자 혹은 카메라의 탓이다. 전문 사진가도 아니고, 그닥 좋은 카메라도 아니니까.)
모래가 무대라면 바람은 연출자다. 모래는 물결모양으로 일렁인다. 모래 산 주변으로 듬성듬성 자라난 풀들, 그리고 표지판에 적힌 동물 그림들은 이런 척박한 곳에도 생물이 산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늘을 만들어놓은 피크닉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아이들은 모래 산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온다. 방패처럼 생긴 플라스틱 썰매 바닥에 왁스를 칠하면 제법 잘 미끄러진다. 눈썰매만큼 미끄럽지는 않지만,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흰 모래 썰매장의 즐거움을 눈썰매에 비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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